이재명 외교의 구조적 한계: ‘선언적 자주’와 ‘실무적 추종’
장창준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환수’ 등 자주적 정책을 외치며 대한민국 주도의 안보 역량을 확립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최근 브뤼셀에서 발표된 제11차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이재명 정부가 미국이 설계한 안보・경제 프레임에 얼마나 깊숙이 종속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로는 ‘자주’를 외치지만, 실무적 행보는 ‘대미 추종’으로 점철된 이재명 외교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 한반도 정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교조적 안보관의 맹목적 답습이다. 공동성명 제12조는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에 부합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라고 명시했다. 조선이 핵 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기한 현실에서, 이미 달성 불가능해진 ‘철 지난 목표’에 매달리는 것은 대화의 문을 원천 차단하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더욱이 “북한은 NPT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흡수통일이나 단기 비핵화 압박이 아닌 현실적인 ‘남북 간 평화적 공존 체제 구축’을 추진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기조’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상대의 체제를 부정하는 서구식 강경 노선에 동조하면서 어떻게 평화공존을 위한 대화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국익 중심 실용 외교’라는 대원칙은 실종됐다. 성명 제11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 지속을 가능케 하는 제3자의 지원, 특히 북한의 지원을 규탄한다. 우리는 러시아-북한 간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실리를 고려할 때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 관리를 위한 필수적 파트너다. 러시아와의 외교적 대화 통로를 남겨두어야 함에도, 유럽 중심의 진영 외교 논리에 휘말려 러-우 전쟁에 대한 유럽의 시각을 고스란히 수용해, 우리 외교의 자율성과 공간을 스스로 축소해 버렸다.
이러한 모순의 본질은 이번 공동성명의 뼈대가 미국 보수 안보 싱크탱크의 전략 논리와 예외 없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대행을 지낸 데이비드 F. 헬비 등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정보 공유 증진, IP4 등 협력 프로그램 강화, 방위산업 협력 확대’라는 프레임은 이번 성명의 “첨단기술 분야 양자 협력 심화”, “방산 관련 사안 교류 발전”, “공급망 다변화”라는 합의 사항에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투영됐다.
미국 보수 안보론자들은 미국 단독의 방산 제조 역량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의 방산 능력을 활용하고, 유럽을 미·일 중심의 안보 블록에 종속시키고자 한다. 이재명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며 외견상 주권을 되찾아오는 듯 생색을 내더라도, 이처럼 방산 공급망과 지휘통제 시스템이 미국과 나토의 하위 구조로 묶이게 되면 실질적인 작전적 자율성은 마비된다. 결국 무기만 대규모로 생산해 서구 진영에 공급하고 정작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도권은 미국 보수 프레임에 저당 잡히는 ‘글로벌 안보 하청 기지화’를 자임한 꼴이다.
대외적으로는 서구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자주를 외치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주변국에 기회주의적 외교로 비쳐 외교적 자산의 손실을 초래할 뿐이다. 자주 외교가 공허한 정치적 레토릭에 그치지 않으려면, 미국이 짜놓은 다자간 안보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관성적 외교 행태부터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구호만 요란한 ‘선언적 자주’는 결국 실무진의 ‘관성적 추종’에 묻혀 국익과 평화 모두를 잃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재명 외교의 구조적 한계: ‘선언적 자주’와 ‘실무적 추종’
장창준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환수’ 등 자주적 정책을 외치며 대한민국 주도의 안보 역량을 확립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최근 브뤼셀에서 발표된 제11차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이재명 정부가 미국이 설계한 안보・경제 프레임에 얼마나 깊숙이 종속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로는 ‘자주’를 외치지만, 실무적 행보는 ‘대미 추종’으로 점철된 이재명 외교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 한반도 정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교조적 안보관의 맹목적 답습이다. 공동성명 제12조는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에 부합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라고 명시했다. 조선이 핵 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기한 현실에서, 이미 달성 불가능해진 ‘철 지난 목표’에 매달리는 것은 대화의 문을 원천 차단하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더욱이 “북한은 NPT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흡수통일이나 단기 비핵화 압박이 아닌 현실적인 ‘남북 간 평화적 공존 체제 구축’을 추진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기조’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상대의 체제를 부정하는 서구식 강경 노선에 동조하면서 어떻게 평화공존을 위한 대화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국익 중심 실용 외교’라는 대원칙은 실종됐다. 성명 제11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 지속을 가능케 하는 제3자의 지원, 특히 북한의 지원을 규탄한다. 우리는 러시아-북한 간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실리를 고려할 때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 관리를 위한 필수적 파트너다. 러시아와의 외교적 대화 통로를 남겨두어야 함에도, 유럽 중심의 진영 외교 논리에 휘말려 러-우 전쟁에 대한 유럽의 시각을 고스란히 수용해, 우리 외교의 자율성과 공간을 스스로 축소해 버렸다.
이러한 모순의 본질은 이번 공동성명의 뼈대가 미국 보수 안보 싱크탱크의 전략 논리와 예외 없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대행을 지낸 데이비드 F. 헬비 등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정보 공유 증진, IP4 등 협력 프로그램 강화, 방위산업 협력 확대’라는 프레임은 이번 성명의 “첨단기술 분야 양자 협력 심화”, “방산 관련 사안 교류 발전”, “공급망 다변화”라는 합의 사항에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투영됐다.
미국 보수 안보론자들은 미국 단독의 방산 제조 역량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의 방산 능력을 활용하고, 유럽을 미·일 중심의 안보 블록에 종속시키고자 한다. 이재명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며 외견상 주권을 되찾아오는 듯 생색을 내더라도, 이처럼 방산 공급망과 지휘통제 시스템이 미국과 나토의 하위 구조로 묶이게 되면 실질적인 작전적 자율성은 마비된다. 결국 무기만 대규모로 생산해 서구 진영에 공급하고 정작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도권은 미국 보수 프레임에 저당 잡히는 ‘글로벌 안보 하청 기지화’를 자임한 꼴이다.
대외적으로는 서구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자주를 외치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주변국에 기회주의적 외교로 비쳐 외교적 자산의 손실을 초래할 뿐이다. 자주 외교가 공허한 정치적 레토릭에 그치지 않으려면, 미국이 짜놓은 다자간 안보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관성적 외교 행태부터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구호만 요란한 ‘선언적 자주’는 결국 실무진의 ‘관성적 추종’에 묻혀 국익과 평화 모두를 잃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