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C를 제재하면서 ‘남북 비타민 C 외교’? 퍽이나… / 변학문

2026-07-13
조회수 57

비타민 C를 제재하면서 ‘남북 비타민 C 외교’? 퍽이나…


변학문



이재명 대통령이 7월 1일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22기 유라시아지역회의'에 참석하여 "단단하게 빗장이 걸린 북의 대문을 끝까지 두드리면 열릴 것이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면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이후 북의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일관되게 공언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평화를 향한 행동을 다시 시작할 것",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와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라고 말했다. "적대와 대결에 무감각해진 우리 자신과도 맞서야 한다", "너와 나로 나누고 가르는 대신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서로를 품어야 한다"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위와 같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굳게 닫힌 조선의 문을 여는 게 말로만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과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특히 상대가 우리의 의도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일수록, 말보다 먼저 축적되는 것은 작더라도 일관된 행동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1년 현 정부의 행동이 말을 따라갔는지는 심각하게 의문스럽다. 한미/한미일 군사 연습 중단・9.19 군사합의 복원은 고사하고, 지난 2월 정부가 공개적으로 사과하면서 공언한 ‘대조선 무인기 침투 재발 방지 조치’도 이뤄졌다는 기사가 없다.


대조선 제재 문제도 마찬가지다. 백번 양보해서 유엔과 미국의 대조선 제재는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지난 한국 정부들의 독자적인 대조선 제재를 유지할 필요와 실효성이 있는지는 전면 검토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제재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면, 그 효과와 부작용을 냉정하게 따져 조정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 등 의무이행을 위한 무역에 관한 특별조치 고시>(산업통상자원부)의 [별표 6] “북한 맞춤형 감시대상품목”이 있다. 이것은 2016년 박근혜 정권이 조선의 4, 5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발표한 130개의 대북 독자 제재 목록으로, 핵 관련 89개 품목과 미사일 관련 41개 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목록의 핵 관련 품목 여섯 번째로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이라는 물질이 적혀 있다. 생소한 전문 용어이지만 알고 보면 매우 친숙한 물질, 바로 “비타민 C”이다. 최근 국내 일각에서 제주도의 대조선 감귤 지원을 예로 들며 “비타민 C 외교로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자”라고 주장할 때 나오는 그 비타민 C이다.


 물론 한국 정부는 비타민 C가 단순히 먹는 영양제라서가 아니라, 우라늄 등 핵물질을 추출・농축하고 처리하는 화학 공정에 사용될 수 있는 화학 물질이라는 이유로 금지했다. 즉, 아무 근거도 없이 포함된 항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통제가 실제로 얼마나 필수적이고 효과적인가이다. 아스코르브산은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현재도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대조선 감시 대상 품목에 포함되어 있다.


비타민 C가 제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이재명 정부가 민간 용도의 비타민 C 반입까지 막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스코르브산을 용도나 종류도 특정하지 않은 채 감시 대상 품목으로 계속 유지한다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악용할 가능성은 언제든 남아 있다. 특히 남북 교류 자체를 억제하려는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이러한 포괄적 규정은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이 비타민 C를 독자 감시 대상 품목으로 지정한 2016년이나 지금이나, 비타민 C는 유엔이나 미국의 명시적인 대조선 제재 품목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최소한 이 물질에 대한 통제가 국제적 공조 차원에서 필수적인 핵심 수단으로 여겨지지는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의 독자적 통제가 조선의 비타민 C 확보를 실질적으로 얼마나 제한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반면 비타민 C는 대표적인 인도주의적 의료・영양 물품이다.


결국 아스코르브산(비타민 C) 제재는 그 필수성과 실효성은 불분명하지만, 상대에게는 ‘우리가 이만큼 꼼꼼하게 제재할 정도로 너희에게 적대적’임을 보여줄 뿐이다. ‘조선의 체제를 존중하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 ‘꽉 막힌 남북 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어보겠다’라고 여러 번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라면, 적어도 이런 부분부터 점검하고 조정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이런 최소한의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열릴 때까지 두드리겠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자기만족 또는 자기 기만적인 스토킹에 불과하다. 


혹자는 "대북 제재를 완화해서 결국 ‘대북 퍼주기’를 하자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가 대조선 제재를 완화해서 무언가를 지원하려 한들,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라는 입장이 완강한 조선이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글은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가 우리 자신의 안전과 번영에 필수적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비본질적이고 실효성도 의문인 조치들부터 정비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역으로 이런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할 의지가 없다면, 남북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것 역시 공허한 수사에 그칠 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이슈 브리프 구독하고
따끈따끈한 정세 현황과 분석을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