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3년, 언제까지 ‘비핵화’라는 신기루를 좇아야 하나 / 변학문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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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3년, 언제까지 ‘비핵화’라는 신기루를 좇아야 하나

변학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73년이 됐지만, 한국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 정착은 여전히 요원하다. 대다수 국민도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하리라 믿지 않을 텐데, 핵을 가진 조선이 언제든 우리를 협박,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 핵을 둘러싼 우리 인식에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전제들이 적지 않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은 한 번쯤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의 핵무기만 사라지면 조선발 안보 위협도 완전히 사라질까? 단 한 번의 공격도 맞지 않는 완벽한 안전이 가능하리라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수도권을 사정권에 둔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비롯한 조선의 재래식 전력도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한국의 재래식 전력이 조선을 압도한다 한들, 압도적 군사력 격차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했던 것처럼 '단 한 발도 맞지 않는' 상황을 상정하기는 어렵다. 즉, 핵무기가 사라진다고 해서 안보 위협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핵을 없애면 전쟁 위험도 사라진다는 통념은 절반도 되지 않을 진실에 불과하다.

둘째, 조선의 ‘합리성’ 문제다. 조선이 핵이든 재래식 무기든 동원해 우리를 공격하면서 자신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 생각할까? 김정은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한국을 굴복시키면 된다는 식의 무모한 도박을 벌일까? 만약 그들이 그토록 비합리적인 행위자라면, 지난 계엄・내란 국면처럼 한국의 대북 방어 태세와 정치적 리더십이 동시에 흔들렸던 ‘절호의 기회’를 왜 그냥 흘려보냈겠는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가자지구 전쟁, 2026년 베네수엘라 침공・이란 전쟁 등 미국의 전략적 관심과 전력이 분산된 시기에 조선은 왜 한반도에서 전면적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나.

위기와 혼란의 틈을 파고들 절호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정하는 것보다 조선 정권이 훨씬 계산적이고 신중한 행위자임을 시사한다. 상호 억지력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오판이나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핵무기 유무와 무관하게 모든 무장 대치 상태에 내재한 위험이지, 오직 비핵화로만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우리가 조선의 위협만을 일방적으로 상정하는 사이 정작 조선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좀처럼 따져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은 한조(남북) 관계를 ‘한국은 선, 조선은 악’이라는 구도로 이해하고, 조선이 일방적으로 도발을 감행하려 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 연합훈련 자체가 자신들을 겨냥한 심각한 위협이다. 우리는 이를 늘 대북 방어훈련이라 부르지만, 실제 훈련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선제공격을 빌미로 한 대조선 공격 훈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올해 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 압송했던 “앱솔루트 리졸브” 작전에는 한미가 함께 진행하는 ‘참수 훈련’과 동일한 병력과 장비, 작전 방식이 그대로 활용됐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훈련이 언제든 실전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수준의 참수 작전 리허설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상대의 위협 인식을 외면한 채 우리의 시각만으로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접근이라 보기 어렵다.

셋째, 최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다시 소환된 “완전한” 비핵화가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인가 하는 점이다.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검증 가능성‘(Verifiable)을 충족하려면 조선 내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의 위치를 낱낱이 파악해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무기급 핵물질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방사선이 차폐되는 용기에 담아 조선 전역 곳곳에 감춰둔다면, 외부에서 이를 찾아낼 현실적 방법이 없다. 결국 조선 체제가 완전히 붕괴하거나 항복하여 미국과 한국이 영토 전체를 샅샅이 수색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현실적으로 상정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게다가 지금은 조선의 핵 개발 초기 단계가 아니다. 조선은 이미 수십 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우라늄 농축 시설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증설했다. 여기에 최근 조중, 조러관계 강화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조중 우호조약 체결 65주년을 계기로 고위급 교류가 이어지고, 조러 외무장관 전략대화가 정례화되는 등 과거보다 조선에 유리한 진영 대결과 다극화 흐름이 심화하고 있다. 제재와 고립을 통한 비핵화 압박이라는 셈법 자체가 예전보다도 더 통하기 어려운 국제 정세로 접어든 것이다.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조선의 비핵화라는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사실상 ’신앙‘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없이 한반도 평화도 없다'는 입장의 고수는 정전 상태를 반영구화하고 다극화와 진영 대결이 격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 스스로 안전과 평화의 길을 가로막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안보는 위협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위협의 관리와 억지,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방대한 핵전력을 유지한 채 군비통제와 위기관리 장치를 발전시켰고, 미국과 중국도 중국의 핵 보유 이후 관계 정상화와 전략적 소통을 추진했다. 핵무기의 존재가 곧바로 평화를 보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평화가 반드시 비핵화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정전협정 73주년을 맞은 오늘,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우리의 평화를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신기루를 좇느라 정작 가능한 안전과 평화의 걸음을 미루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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