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린 누출 사고가 던지는 질문, “왜 한미관계는 더 종속적인가”
장창준
지난 7월 28일,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K-55) 내 탄약 저장구역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유출 의심 사고는 우리 사회에 또다시 씁쓸한 경종을 울렸다. 사고 발생 9일 만에 미군 당국이 최종 감식 결과 해당 물질이 백린이 아닌 ‘무해한 표면 부식 물질’이라고 발표하며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주권 국가의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닌 권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드러냈다. 왜 우리의 한미관계는 이토록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구조에 갇혀 있는가.
사고 당시의 정황을 복기해보면 한국 정부의 무력함은 더욱 극명해진다. 오후 4시 54분 유출 의심 신고가 접수된 후 단 14분 만에 미 공군 제51전투비행단은 ‘지상 사고’로 규정하고 내부 구성원에게 긴급 문자를 발송했다.
반면, 평택시가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오후 5시 37분이었다. 미군은 기지 반경 1,000피트(약 305m)에 통제구역을 설정한 반면, 한국 당국은 바깥에서 갈팡질팡하며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사태가 단순히 정보를 제때 공유받지 못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용산기지 유류 유출,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 의혹, 부평 캠프 마켓의 다이옥신 오염, 탄저균 실험실 반입 논란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격하는 치명적인 유해 물질 위협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기지 안으로 들어가 진상을 규명해 본 적이 없다.
미군이 대한민국 영토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초보적인 출입권과 조사권조차 행사하지 못한 채 미군의 ‘동의’와 ‘시혜적 협조’만 바라봐야 했다. 미군의 허락이 없으면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이 구조적 무력함 속에서, 우리는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영토 안에서조차 미군이 내놓는 일방적인 해명에 운명을 의탁해야 하는 치욕적인 상황을 강요받아 왔다.
여기서 우리는 타국의 사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2015년 미일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보완하는 「환경보충협정」을 체결하여 환경 사고 발생 시 자국 당국이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길을 확보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주변의 과불화화합물(PFAS) 검출 사태에서도 일본 정부는 이 협정을 근거로 당당히 현장 접근과 공동 조사를 이끌어냈다.
나아가 독일은 NATO-독일주둔군지위협정(SOFA) 제53조 등을 통해 군사 기지 내 문제라 할지라도 환경 등 민간 영역에서는 독일의 엄격한 국내법과 지방 환경 당국의 실질적인 감독권이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외국 군대의 주둔 속에서도 자국민의 안전과 환경권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주권적 통제 장치를 제도화했는데,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과 2001년 환경특별양해각서가 존재하지만, 이는 미군의 자발적 협조가 전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종속적 구조의 테두리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기지 내부를 자유롭게 들여다볼 독자적인 출입권이나 조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미군의 일방적인 해명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가의 제1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번 오산기지 백린 누출 사고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왜 한미 관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종속적인가.
이제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SOFA 개정, 반입 물질 사전 통보 의무화, 그리고 철저한 한미 공동 조사 요구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불평등한 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방기하는 일이다. 주권 국가로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제도적 개선을 이뤄낼 때 비로소 비대칭적이고 종속적인 한미관계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백린 누출 사고가 던지는 질문, “왜 한미관계는 더 종속적인가”
장창준
지난 7월 28일,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K-55) 내 탄약 저장구역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유출 의심 사고는 우리 사회에 또다시 씁쓸한 경종을 울렸다. 사고 발생 9일 만에 미군 당국이 최종 감식 결과 해당 물질이 백린이 아닌 ‘무해한 표면 부식 물질’이라고 발표하며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주권 국가의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닌 권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드러냈다. 왜 우리의 한미관계는 이토록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구조에 갇혀 있는가.
사고 당시의 정황을 복기해보면 한국 정부의 무력함은 더욱 극명해진다. 오후 4시 54분 유출 의심 신고가 접수된 후 단 14분 만에 미 공군 제51전투비행단은 ‘지상 사고’로 규정하고 내부 구성원에게 긴급 문자를 발송했다.
반면, 평택시가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오후 5시 37분이었다. 미군은 기지 반경 1,000피트(약 305m)에 통제구역을 설정한 반면, 한국 당국은 바깥에서 갈팡질팡하며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사태가 단순히 정보를 제때 공유받지 못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용산기지 유류 유출,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 의혹, 부평 캠프 마켓의 다이옥신 오염, 탄저균 실험실 반입 논란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격하는 치명적인 유해 물질 위협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기지 안으로 들어가 진상을 규명해 본 적이 없다.
미군이 대한민국 영토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초보적인 출입권과 조사권조차 행사하지 못한 채 미군의 ‘동의’와 ‘시혜적 협조’만 바라봐야 했다. 미군의 허락이 없으면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이 구조적 무력함 속에서, 우리는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영토 안에서조차 미군이 내놓는 일방적인 해명에 운명을 의탁해야 하는 치욕적인 상황을 강요받아 왔다.
여기서 우리는 타국의 사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2015년 미일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보완하는 「환경보충협정」을 체결하여 환경 사고 발생 시 자국 당국이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길을 확보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주변의 과불화화합물(PFAS) 검출 사태에서도 일본 정부는 이 협정을 근거로 당당히 현장 접근과 공동 조사를 이끌어냈다.
나아가 독일은 NATO-독일주둔군지위협정(SOFA) 제53조 등을 통해 군사 기지 내 문제라 할지라도 환경 등 민간 영역에서는 독일의 엄격한 국내법과 지방 환경 당국의 실질적인 감독권이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외국 군대의 주둔 속에서도 자국민의 안전과 환경권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주권적 통제 장치를 제도화했는데,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과 2001년 환경특별양해각서가 존재하지만, 이는 미군의 자발적 협조가 전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종속적 구조의 테두리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기지 내부를 자유롭게 들여다볼 독자적인 출입권이나 조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미군의 일방적인 해명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가의 제1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번 오산기지 백린 누출 사고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왜 한미 관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종속적인가.
이제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SOFA 개정, 반입 물질 사전 통보 의무화, 그리고 철저한 한미 공동 조사 요구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불평등한 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방기하는 일이다. 주권 국가로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제도적 개선을 이뤄낼 때 비로소 비대칭적이고 종속적인 한미관계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