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겨레하나 평화포럼] 김정은 집권 10년, 보건의료 발전 전략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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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의료원칙, '정성'의 의료인상(像) 재정비 계기되었을 것
[겨레하나 평화포럼 지상 중계 ④] 김정은 집권 10년, 보건의료 발전 전략

이승현 기자
[통일뉴스]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175



2020년 1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3년 4개월이라는 고통의 세월을 지나고 나서야 세계는 '감염되더라도 치명률이 낮아지는' 엔데믹(endemic, 풍토화)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대지진 후 꺼지지 않는 여진처럼 감염병 창궐의 두려움은 남아있고,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은 그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엔 mRNA백신을 비롯해 새로 개발된 백신이 대체불가의 유일무이한 처방으로 떠받들어졌다. 백신없이 국경봉쇄로 버티는 북한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불안과 관심이 높아졌고 더불어 비인도적 제재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그런데 북은 제재와 자연재해에 코로나19 위기라는 미증유의 3중고를 어쨌든 극복하고 지난해 8월 코로나 종식선언을, 3년 7개월만인 지난 8월엔 국경봉쇄를 풀었다.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북 보건의료의 특징, 보건의료 분야 개선과 발전을 도모하는 북의 계획 등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소장 변학문)이 지난 9월 20일 평화통일교육장에서 '김정은 집권 10년, 보건의료부문의 발전전략'이라는 주제로 제4회 겨레하나 평화포럼을 진행했다.

지난 2002년부터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활동가로 시작해 20년 넘게 보건의료 분야 남북협력사업을 해 온 엄주현 박사가 발표하고 변학문 소장이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엄주현 박사는 대북 인도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탄생과 개인적 경험을 섞어가며 편안하게 발표를 시작했다.

또 남북 보건의료분야 협력의 간략한 역사와 북의 보건의료 체계 등에 대해 소개하고 북의 발전계획과 전망까지 두루 짚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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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남측 대부분의 민간 교류협력단체와 마찬가지로 1995년 북이 유엔에 수해피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서 공식화됐고 1996년부터 모금사업을 하면서 대북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남측의 진보적인 보건의료인들이 모여서 북녘 어린이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이미 있었던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의 이름으로 사업을 추진하다가 2001년에 사단법인 설립을 하게 됐는데, 남북이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로 현재에 이르게 됐다.

앞으로 5년 이내에 교류협력은 어려울 것 같고 현재 정세도 너무 좋지 않아서 다른 민간단체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원본부의 경우에도 후원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고 기존 활동가도 다 그만둔 상태여서 혼자 남아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 경우에는 지원본부가 사단법인화된 2001년 그 이듬해부터 결합해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20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대동강구역병원', '철도성병원',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사업을 담당하면서 50여 차례 평양을 다니고 사리원, 신의주, 개성같은 곳을 방문했다.

북쪽 선생들을 처음으로 만난 건 2004년 12월 심양이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게 그때 호텔 실온이 영하 19도였던게 기억난다. 만주의 한겨울 추위를 느끼면서 항일투쟁에 나섰던 선조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이듬해인 2005년부터 평양방문을 했는데, 처음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의약품, 영양제 등을 지원하다가 2000년에 접어들어 북측으로부터 '의약품 생산설비와 원료를 주면 직접 생산하겠다'는 요청이 있어서 '의약품 생산설비'를 전달했다.

어린이 시설이 많기 때문에 시럽제 설비와 알약 정제설비, 또 약초를 많이 활용하는 특성상 환 제품 설비들을 지원했었다. 대동강구역병원의 경우에는 평양 23개 구역중 20만~30만명 정도의 주민을 포괄하는, 500병상 이상 규모의 큰 규모여서 전부 다는 못하고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의료설비와 장비, 의약품 등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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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성병원 지원부터는 환경 개선 사업이라고 해서 병원 현대화 즉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했다. 2007년에 합의를 맺고 2008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의 경우에는 아예 병원을 새로 건립하는 사업이었는데 처음에는 소모품과 완제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개발협력 양상의 사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 활동을 시작한지 딱 10년만인 2012년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대북사업이 안되기 시작하더니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남측 독자제재인 5.24조치가 시행되면서 대북사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는 위기가 닥쳤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핑계로 2012년 북한대학원 석사를 하고 이어서 계획에도 없던 박사까지 하고 202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때 연구했던 게 '북한 보건의료체계 구축과정 연구'였다.

그걸 손봐서 2021년에 『북조선 보건의료체계 구축사』를 쓰게 됐다. 1945년부터 1970년까지 시기를 다뤘는데,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2, 3, 4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무튼 저는 보건의료라는 창을 통해 북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고 연구도 하고 있다.


남북 보건의료 분야 교류 협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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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유엔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남북 보건의료협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이 활용되면서 규모가 상당히 커졌으나 박근혜 정부의 2014년 드레스덴선언 이후 북측이 더 이상 남측 민간단체와 인도지원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공식적으로 끊어지게 됐다. 실제 남북 교류협력은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거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미 중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사진 - 엄주현 박사 제공)


지원본부의 경우에는 1997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물자지원을 해왔지만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2016~2017년엔 물자를 못보냈고,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보내지 못하다가 2022년과 2023년에 간신히 보내긴 했지만 앞으로는 그것조차 어려울 것 같다.

해외동포들과 함께 3자협의를 통해 협업하는 교류협력 방식을 묵인하던 통일부가 최근 남북 양자합의외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탓에 당분간은 남측에서 물자를 북에 보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평양을 방문해 협의도 하고 투명성 확보 절차도 밟고 기술 이전도 하는 사람의 교류도 닫혀 있다.

제 경우 2018년 11월이 최근 마지막 방북이었고, 그 이전에도 2010년, 2013년, 2018년 각 1회 방북할 정도로 인적교류는 거의 안되었다고 봐야 한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수차례 방북했던 때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고 봐야 한다.


북,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 구축의 역사

북은 정부수립 초기부터 '사회주의 보건의료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왔다고 할 수 있다.

1917년 소련 사회주의 혁명이후 확립된 사회주의 보건의료원칙은 △포괄적인 양질의 보건의료 △수혜대상의 보편성 △국가에 의한 단일하고 통일된 서비스 △무료서비스 △광범위한 예방의료 △보건서비스에 노동자(대중)의 참여 등이다.

전체 인민을 대상으로 수혜자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무상서비스로 제공하며, 예산이 많이 드는 치료중심이 아니라 광범위한 예방의료 중심의 사업으로 하고,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 보건의료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인민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

우리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공공의료 붕괴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북은 사회주의 보건의료의 6원칙을 채택하고 다소 교조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초기부터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6년 미군정청 여론국이 8,4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선호하는 국가체제는 자본주의 1,189명(14%), 사회주의 6,037명(70%), 공산주의 574명(7%)로 나타났다. 1946년 8월 13일 [동아일보] 보도에 실린 내용인데, 당시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에 막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자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북에서는 보건의료와 관련해서 소련 사회주의 정책이 도입된 것 같다.

해방 직후 북에 있던 유일한 의학대학이 평양의학전문학교였다. 후에 북한 2대 보건상을 지낸 최창석 등 좌익계열 인사들이 일본인 교장과 원장을 사임시키고 이 학교와 병원을 접수한다.

이들은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참조했는데, 1946년 9월 26일부터 1947년 3월 27일까지 6개월간 국외 젊은 의사들로 의사유학단을 구성해 소련의 중요 보건의료시설을 돌아보면서 교육을 받게 된다.

이 일을 주도했던 인물은 1925년 이르쿠츠크 의대를 졸업한 외과 전문 리동화였다. 그는 소련군과 함께 평양에 입성한 김일성의 주치의였고 소련군 장교 신분이었다. 리동화의 주선으로 평양의전 졸업생을 중심으로 도쿄의전과 세브란스의전, 대구의전 졸업생 등 총 30명이 소련 유학길에 올라 소련중앙의사강습원, 모스크바시 보건부, 중앙말리리아연구소, 중앙결핵연구소, 중앙부인과치료소, 메치니코프 전염병연구소, 중앙보건선전연구소 등 12개 기관에서 하루 4시간씩 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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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소련방문 의사유학단 명단 (사진 - 엄주현 박사 제공)

남쪽에서는 1945년 11월 미 군정청이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아 10명의 의사를 미국 존스홉킨스·미시간·하버드대학교 등 3개 대학 보건대학원에 1년간 연수를 보냈다. 보건행정에 중점을 둔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이들이 한국에 돌아와 장·차관 등을 맡으며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기본 틀을 마련하게 된다.

북한은 1946년 보건국에서 정책계획을 수립하면서 처음부터 '의료국영화'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불안을 주지 않으면서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또한 재정적 상황을 감안해 가급적 점진주의로 개선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회주의자들은 당시 혁명정세를 '반제반봉건 민주주의혁명' 단계로 파악하고 소비에트 정권 및 제도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수립을 목표로 설정했는데, 당시 보건국도 '전체 의료기관을 국영화하기 위해서는 최소 1억 수천만원의 거금이 필요한데 그만한 재정투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기존 국공립시설을 국영화하고 개인병원은 손익을 참작해 장기적 계획에 따라 국영병원으로 전환을 모색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 발발한 전쟁으로 상황이 급변하게 됐다. 많은 병원시설이 파괴되고 보건의료인들의 전시 사망과 월남으로 전문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 처하면서 의료 국영화가 빠르게 도입되고 전쟁중인 1953년 1월 1일부터 '전반적 무상치료제'가 실시됐다. 이후 1960년 2월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 법령이 채택되고 이듬 해부터 4차 당대회 결정으로 각도에 전문병원과 산원, 소아병원, 고려병원 등이 개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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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체계 중 행정구역별 이송체계 (사진-엄주현 박사 제공)

일련의 과정으로 각 리 단위에 병원을 설립하고 각 시.군 병원마다 산과와 소아과 병동을 설치했으며, 도시부터 농촌에 이르기까지 의사담당구역제를 실시했다.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라는 김 주석 교시에 따라 1961년 9월 4차당대회에서 실시가 결정된 의사담당구역제는 1969년에 이르러 제도로 정착되는데, 의사 1명이 일정한 가정세대를 고정 담당해 예방치료 사업을 하는 일종의 '주치의'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1970년 11월 5차당대회에서 최말단 행정단위인 리 진료소의 병원 방침이 결정되어 1974년에 완료되었으며, 1980년 10월 6차당대회에서는 '평균수명이 해방 전과 비교해 35년이나 늘어 73세가 되었고 누구나 무료로 병을 치료해 병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며 행복을 누리는 세기적 염원을 이루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해 4월에는 보건의료 기본법률인 인민보건법을 채택한다.

북의 보건의료체계는 △행정구역별 이송체계 △조직 및 집단 진료체계 △전문의료체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행정구역별 이송체계에서 1차는 일정한 가정세대를 담당하는 호 담당 의사가 주민건강관리를 맡는다. 입원을 요하는 환자는 2차 의료기관인 군(구역) 인민병원, 3차 도(시)인민병원으로 옮기고, 여기에서도 치료가 되지 않으면 4차 의료기관인 평양의 중앙급 병원으로 이송해 수술 등 조치를 하게 된다. 이와 별개로 공장, 기업소, 학교 등에도 진료소 및 병원이 운영되는데, 큰 규모의 연합기업소에는 수백명의 보건의료인이 근무하는 병원도 있다.

전문의료체계는 행정구역으로 구분된 9개 도와 평양직할시, 개성, 남포, 나진 등 3개 특별시 등 13개 도·시에 의학대학을 두어 필요한 보건의료자원은 스스로 해결하는 체계를 갖추고 각 도별로 산원과 소아병원, 고려병원 등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의 개조 완료와 '정성'의 의료인

이렇듯 북한 보건의료체계는 크게 △무상치료제 △예방의학제도 △의사담당구역제도(호담당의사제)를 특징으로 한다.

국가가 모든 보건시설과 장비를 소유하고 의료, 인력 또한 국가가 직접 고용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지는 단일체계 의료보장제인 무상치료제는 1947년 해방 직후 '사회보험법에 의한 무상치료제'에서 전쟁 이후 '전반적 무상치료제'와 1960년부터 이뤄진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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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무상치료와 비교하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 병원비를 항목별로 적어 놓았다. (사진-엄주현 박사 제공)

무상치료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지식인 등 모든 인민들이 성별, 연령, 거주, 직업, 노동의 양과 질에 관계없이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진료하고, 약받고, 입원하는 모든 치료 과정을 국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외래 치료환자 포함해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주는 약 △진찰, 실험검사, 치료, 수술, 왕진, 입원, 식사 등 환자 치료를 위한 모든 봉사 △근로자들의 요양의료봉사 △요양을 위한 왕복 여비 △해산 방조 △건강검진, 건강상담, 예방접종 등 예방 의료봉사가 모두 무료이다. 요양을 위한 왕복여비는 사회협동단체가 부담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의학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은 '예방의학'은 '위생방역사업 강화'를 주된 방침으로 하며, 구체적인 사업으로는 위생방역소가 주관하여 각급 병원 및 진료소 등 보건의료 조직망이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의사마다 구역을 맡아 주민들에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담당 구역제'는 담당 구역의 진료소, 종합진료소, 도·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구역 내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며, 의사들은 환자 치료와 함께 담당 구역 내 위생선전, 소독, 예방접종, 검진 등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회주의 보건의료 체계와 다르게 북에서 독특하게 구현되고 있는 특징이 '보건의료인에 대한 정신 개조 : 정성의 의료인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6년 4월 3차당대회에서 반종파투쟁을 전당적으로 전개해 반대파를 숙청한 김일성 당위원장(당시)은 1958년 8월 전 농가를 협동조합에 가입시키는 '농업집단화' 완료와 자본주의적 상공업, 특히 개인상업부문의 개조를 계기로 국가가 전 국민을 대표하여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전인민적 소유'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하는 '협동적 소유'로 마무리되었다고 정리한다.
이처럼 사회주의적 경제형태의 압도적 우위와 협동화 개조라는 정책의지를 바탕으로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 개조'를 실현했다고 선언한 북은 이때부터 모든 정책에 주체와 자립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전시에 사회주의 국가에서 파견했던 적십자의료단이 1957년에 모두 귀국하고 1958년에는 남아있던 중국인민지원군도 중국으로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북은 1961년부터 사회주의 개조 완료 후 '공산주의 인간형'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상개조 활동을 본격화한다. 이 과정에서 나운 것이 '정성의 의료인'이라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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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3일 전신 48%에 3도 화상을 입은 방하수 어린이가 함흥비료공장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병원 의료진과 함흥의학대학 5학년 2반 17명의 실습생 등 38명이 이 어린 학생들 살리기 위해 피부이식과 헌혈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을 들여 10개월만에 완치시켰다. 보고를 받은 김일성 주석이 이들을 진정한 공산주의자, '붉은 보건전사'로 명명하면서 지금까지 '정성의 의료인'이라는 표현이 유지되고 있다. 북측 의사 가슴에 달린 '정성' 명찰. (사진-엄주현 박사 제공)

'인간이 정성을 다하면 돌위에도 꽃이 핀다'는 의미일텐데, '정성'을 가슴에 새기는 의료인들은 △환자의 아픔은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발병을 막기 위해 일상적으로 생산현장과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과 인력은 본인이 쓰러지면서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북쪽은 이런 보건의료인상을 갖고 있다.

또 △정성의 표현으로 자신의 피와 피부를 제공하고 뼈까지도 기증하면서 △난치성 질병 치료에 집중하고 △질병 치료에 고려의학을 결합해 주체의학을 전면화하며 △고려의학과 민간요법을 적극 활용해 약초로 합성의약품을 대체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북 보건의료체계의 특징

북한이 지금까지 구축한 보건의료체계의 특징은 △국가 보건의료 정책을 최하위 행정단위와 보건의료인까지 일괄 전달하는 강력한 통제체제 구축 △의사 1인이 맡은 일정 규모의 인민들에게 치료와 예방의학 혜택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의사담당구역제 채택 △주체의학 원칙에 따라 신의학과 한의학의 배합, 약초의 적극적 활용 △부족한 국가자원을 자력갱생과 정성의 정신력으로 대신하는 의료인 양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하겠다'는 연설을 했는데, 그해 9월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제' 발표로 구체화된 '과학기술, 지식경제, 새세기 산업혁명' 정책과 2017년 11월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것으로 귀결된 2013년 3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대표적 정책수단이었다.

그러면서 초기부터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해서는 심각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2014년 3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을 비롯한 3대 대북제안을 담은 드레스덴 선언이 발표되자, 즉시 '흡수통일 대결선언'이라고 반발하면서 남측 민간단체와 해외동포 등에도 인도주의협력사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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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민족화해협의회가 2014년 4월 28일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 보낸 인도주의협력사업 중단 통보 전문. (사진-엄주현 박사 제공)

북측은 2019년 8월에는 평양에서 활동하던 유엔개발기금(UNDP),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UNICEFF),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등에도 상주 인원 축소를 요구했다.

이들 국제기구들은 1995년 북이 유엔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 후 평양 사무소를 만들기 시작해 상주인원이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남측 민간단체와 해외동포 뿐만 아니라 교류 협력 활동을 해 온 국제기구들에게도 인도적 지원은 안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북은 왜 인도주의 협력에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었을까?

2008년부터 이명박 정부는 남북 교류협력을 옭죄기 시작해 그해 거의 1/4토막이 났고 2010년 대북 독자제재조치인 5.24조치에 이어 2012년에 들어서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가 됐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기대 자체가 무망한 상황에서 북은 선제적으로 인도적 협력사업 중단를 선언했던 것은 아닐까.

또 그 사이 북에서 전염성 질환이나 영양 관련 질환 지표가 많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북 체제와 보건의료 상황을 폄훼하는데 대한 반발도 있고, 대외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자력갱생을 강조해야 하는데 그동안 주민과 간부들 사이에 외부 의존성이 높아진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내부적 필요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적 협력사업 중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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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아 1천명당 영아사망률, 5세미만 아동사망률 (자료출처 - 통계청)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북한의 출생아 1천명당 영아 사망은 13명으로 나와 있다. 북이 국제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던 1995년에 64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개선된 수치이고, 사정이 괜찮았던 1980년 32명에 비해서도 훨씬 좋다.

이 지표를 보면 인도적 지원이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감염성 질환에 있어서는 호전 기미가 없거나 다소 악화되는 측면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인도적 지원으로는 안되고 경제발전을 통해 전반적 환경을 개선을 하는 자체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이 2017년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2018년에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화에 나섰던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은 그해 12월 당 제7기 5차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당은 또다시 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을 결심하였다"고 하면서 '정면돌파전'의 주요 내용중 하나로 '과학, 교육, 보건사업 개선'을 제시했다. '사회주의 본태'를 수호하는데서 과학, 교육, 보건분야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는 것이 매우 절실한 문제였다는 인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 전원회의 직후 2020년 1월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더욱 불가피하게 내치에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했다.


코로나19 정세 자력갱생 강화 기회로 적극 활용

북의 경우에도 세계적 발병추세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2000년 이후 사스(2002),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2), 에볼라(2013) 등 신종 감염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북은 에볼라의 경우 에이즈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생물무기 연구과정에서 발생한 전염병이라는 인식을 갖고 세계적으로 이런 신존 감염병이 돌때마다 국경을 완전히 봉쇄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랬다. 그 전에도 해외거주 자국민의 입국을 완전 차단했다.

코로나19의 경우 처음엔 진짜 공포 그 자체이지 않았나. 북도 마찬가지였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발열자가 확인된 세대에는 '격리'라고 크게 써붙여놓고 출입을 관리했고,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것도 인민반별로 시간대를 달리하도록 해 오후 6시 통금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노동신문' 등을 통해 매일 전 세계 사망자 통계를 발표하는 등 기사도 엄청나게 쏟아냈고, 실제로 비상방역법을 제정해 마스크 미착용에 5천원 벌금, 최대 사형까지 구형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봉쇄 정책을 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이런 보건위기 상황을 자력갱생 강화를 위한 기회로도 판단했던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3년동안 보건의료 발전전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먼저 평양을 중심으로 전문병원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한다.

김정은 집권 시기 초기부터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 완공(2012.10), 대성산종합병원 개원(2013.3), 옥류아동병원과 류경치과병원 개원(2013.10), 류경안과종합병원 개원(2016.10)을 꾸준히 추진해오다 2020년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을 착공한다.

많이 오해하는 것이 평양종합병원 건설 결정은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계획한 것이 아니라 2019년 12월 당 제7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2020년 당창건 75주년을 맞아 우선 건설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공교롭게 코로나19 발생시기와 맞아떨어졌던 것일 뿐이다. 다 아는대로 결국 개원을 하지는 못했다.

건설은 했지만 건물 내에 의료장비 등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해 8~9월에 태풍 바비와 마이삭이 북부지방을 강타하면서 함경남북도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해 병원 건설을 중단하고 복구사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에는 전문병원들이 당창건기념탑을 중심으로 건설되기 시작했고 최근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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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요 전문병원 위치 (사진 - 엄주현 박사 제공)

또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2021년 12월 제8차당대회에서 도농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선언이 발표되면서 각 도차원에서 평양 병원을 모범으로 삼아 전국의 병원을 현대화하는 사업이 진행중이라는 것.

예전에는 기존 시설을 개보수하는데 그쳤다면 2022년부터는 특히 도급 종합병원의 경우 아예 새로운 장소에 새로 짓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2022년 8월부터는 북 보건의료시설의 명칭에서 '인민'을 이 완전히 삭제했는데, 종합병원으로 바꾸려는 계획으로 파악된다.

평양종합병원과 마찬가지로 함경남도 인민병원은 함경남도종합병원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체계는 유지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각 도와 직할시, 특별시의 인민병원들은 모두 종합병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대동강구역(인민)병원, 사리원시(인민)병원, 강남군(인민)병원, 만경대구역(인민)병원과 같이 '인민'이라는 글자가 다 빠졌다. 질병예방과 위생선전 등 활동을 벌이는 각 도,시,군 위생방역소의 명칭은 모두 '질병예방통제소'로 바뀌었다. 질병예방통제소에는 생물안전 2급 수준의 설비를 검사실을 갖추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원격진료의 적극적 활용과 의약품 확보

외부에서 매우 흥미롭게 보는 것은 원격의료를 엄청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에서 원격의료는 2010년 김만유병원 '먼거리의료봉사실'에서 중앙과 도를 연결하는 먼거리의료봉사체계를 운영하기 시작해서 2012년에는 평양산원과 각 도 산원을 연계하는 체계가 수립됐고, 2014년에는 옥류아동병원과 각 도 소아병원이, 2016년 5월에는 고려의학과학원과 도 고려병원을 연계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에 세운 전문병원들과 각 도 전문병원이 연계가 되고 거기서 그친게 아니라 도 아래 각급 병원들까지 연계하는 걸 볼 수 있다. 2021년 12월 8차당대회 이후에는 가장 하부단위인 리 진료소나 리 병원까지도 먼거리로 연계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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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아동병원과 각 도 소아병원, 시군 병원 소아과를 연계하는 먼거리 의료봉사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2018년. (사진 - 엄주현 박사 제공)

환자를 놓고 의사들이 협진도 하고 수술에 관한 협의도 한다. 또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의학강의도 한다.

먼거리 의료봉사체계가 수립된 초기에는 이렇듯 중앙 병원의 의사와 지방 병원 의사들이 한 환자를 두고 협진과 수술 협의, 의사 대상 교육을 진행하는게 중심이 됐지만 지금은 보다 폭넓게 활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최근 북측 소식에 따르면, 국가자료통신망에 '건강'이라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져서 수십만명의 주민들이 여기에 가입해 의약품도 구매하고 의료상담도 받는다. 주민들은 인트라넷이나 휴대전화로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데, 30여개의 전문 상담과에 200여명의 중앙급 병원 의료인들이 상담에 응하고 있어 환자들은 전문 상담을받은 뒤 의약품 구매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원격의료가 발전하는 모습이다. 최신 의료서비스는 무상이 아니라 유상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이런 변화를 반영해 올해 3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인민보건법과 의료법이 수정, 보충되기도 했다. 아직 수정, 보충된 내용을 볼 수가 없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파악은 안되고 있다.

보건 의료에서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의약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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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 전국에 약국개설 붐이 일고 있다. (사진 - 엄주현 박사 제공)

예전과 달리 지금 북의 제약공장에서는 좋은 약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데도 열성을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약공장에서 직접 약국을 운영하면서 판매하기도 하고 의약품 관리소에서도 여러 약국에 적극적으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2018년 평양에서 약이나 건강식품에 대한 포스터가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인민들에게 자기 제품의 우수한 기능을 알리기 위해 홍보하는 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대목은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어 사회주의책임관리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업소는 남는 이익을 국가납부금(국가기업이익금, 거래수입금, 지방유지금)으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생활비(임금), 원료확보, 기업운영비 등으로 사용하는 등 자율성이 확대되다 보니까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국가 차원에서도 계획지표를 국가지표와 지방지표, 기업소지표로 구분해서 지방 및 기업소지표의 계획을 세우는 권한부터 지방인민위원회나 기업소에 넘기고 있다.

그동안 북의 약국에 대한 자료들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1월 오미크론 확진자 발표 이후부터 보도가 많이 되기 시작했다. 보도에 따르면, 평양에 670 여 곳, 전국적으로는 4,300여 곳의 약국과 의약품 매대가 있고 70여종의 의약품이 공급되고 있다.
북측과 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했던 한 미국 시민권자의 이야기로는 북 당국이 승인한 기업운영권이 있으면 대학이나 병원에 상점판매권을 요청해서 약국 개설이 가능하다고 한다. 해외 한 민간단체는 평양의학대학에 약국을 열어 수익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최고인민회의 21차 전원회의에서 '의약품법'을 채택하면서 1997년 제정된 '의약품관리법'에서 정한 '의약품의 생산과 검정, 보관, 공급, 이용에 필요한 제도와 질서 수립 규정'에 '판매' 규정을 추가했다.

많이 알려진대로 북은 약초를 활용한 신약개발을 엄청나게 하고 있다.

2016년 9월에는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했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원료가 우엉이다. 화학적 제조가 아니라 흔한 약재를 원료로 만든 천연 항바이러스제라고 할 수 있다. 지카, 에볼라 등 급성 호흡기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당시에도 예방 및 치료 효과가 크다고 선전했지만, 코로나19에도 '우웡(우엉) 항 바이러스 물약'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은 신약 개발이나 신기술을 도입한 보건의료인에게는 당원 가입, 학위, 과학상 등 보상도 제공하고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할 경우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는 물질적 보상도 하는 것 같다.


다시 '붉은 보건의료인'

여러 보상체계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은 '붉은 보건의료인'을 강조한다.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추구하며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김정은 시대에 당연한 귀결이다. 북한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당원(670만명 추정)이 모두 당세포로 망라되어 있는 만큼 보건의료인들 역시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당 정책 관철'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코로나19 발생(2020.1~2023.) 이후 3년 여간 보건의료 분야 발전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조성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흐트러진 보건의료 시스템과 법체계를 정비하면서 '김일성 수령'이 구축한 사회주의 보건의료 체계를 복구하는 일에 집중해 왔다.

또 보건의료 관련 자원 확보에 시장경제 정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는 유상으로 제공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물자가 없는 '무상' 상태보다는 물자가 풍부한 '유상' 제공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동원체계가 일상인 북에서 양질의 노동력은 중요한 자원관리 정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다양한 정책을 구사하지만 자원의 부족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있어서 계획보다 진전의 속도는 느리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보건의료를 선진화하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재와 보건 및 기후위기 등 이른바 북이 겪은 3중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만큼 이를 사활적으로 막고 대비해야 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그래야 권력과 국가의 미래도 담보된다는 것은 북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보건의료의 전반적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길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가야 할 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다른 측면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북한 사회에서 보건의료는 주민들이 선택하는 권리이기보다는 국가의 시혜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주민들도 병원은 나약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스스로 시혜의 대상인지 점검하고 어지간하면 개인이 해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펴는 동안 보건의료인들의 자세도 그렇고, 실질적인 진료 체계도 그렇고 짧지 않은 기간동안 오히려 보건의료와 관련된 체계와 태세를 정비할 수 있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시기 봉쇄적책은 과도하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북의 의료인 스스로 예전 '정성의 보건의료인'을 되새기고 다시 태어나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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